핏기 없는 좀비 댄서들이 삐걱삐걱 춤을 추다 남자를 당당히 차버린 자신을 위해 ‘브이’를 날린다. 오싹하고 귀여운 ‘브이’처럼 ‘이정현’하면 떠오르는 독특한 무대들이 있다. 그런 무대의 모티브는 대부분 그녀의 머릿속에서 시작된다.

“평소에 영화를 광적으로(?) 봐요. 예전 영화들도 많이 챙겨 보고요. 외국 갈 때마다 작고 기괴한 전시회, 쉽게 구할 수 없는 특이한 외국서적들을 찾아다니고요. 그러다 보니 굳이 자료조사 없이 밥 먹다가도 떠올랐던 콘셉트들이죠.”

이번 앨범 역시 그녀가 던진 ‘공주병 걸린 귀신’에 대한 이야기가 결혼 적령기인 그녀의 실제 상황과 맞물려 ‘결혼식 전날 죽은 유령신부’로 탄생했다. 뮤직비디오 속 눈꺼풀 위에 눈을 그려 네 개의 눈을 깜빡이는 장면을 제안 받았을 때, 너무 좋아 소리를 지를 정도였다니.

보통 가수들은 곡이 나오면 거기에 맞게 활동 콘셉트를 정하는 반면, 이정현은 스스로 정한 콘셉트로 음악을 만든다. 그래야 그녀만의 음악이 나오니까. (덕분에 작곡가들만 끙끙 앓는단다) “다른 것들은 다른 분들이 잘 하고 있잖아요. 저는 새로운 걸 하고 싶어요. 논다는 기분으로 재밌는 비주얼을 보여줄 때 엔도르핀이 솟아요.”

여자 솔로 가수는 배우보다는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 그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새로워지는 것 외에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는다 . “신선하고 ‘우와’할 만한 걸 보여주는 게 목적이에요. 꼭 누군가를 이겨야 한다는 마음 대신 스스로에 대한 기대를 더하면 모든 것은 재밌어져요. 희열을 느끼지 못하면 안하는 게 낫죠.”

중국 진출 역시 그러했다. 이정현의 강렬한 이미지가 되레 벽이 되었을 때 그녀가 변신을 멈추지 않게 무대가 되어준 곳이 중국이다. 중국에서의 활동이 벌써 13년차라며 스스로도 놀란 그녀의 롱런 비결은 중국음식을 사랑해서(?)란다. “원래 중국음식을 매우 좋아하는데(웃음) 그러다 보니 문화와 그 나라까지 사랑하게 되더라고요. 많은 후배들이 해외 진출하고 있잖아요. 어딜 가든 그 나라를 먼저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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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다’, ‘예쁘다’ 말고 ‘이정현답다’는 말이 있다. 사전엔 없지만 한번이라도 그녀의 무대를 본 사람들은 모두 아는 말. 하지만 그녀는 ‘이정현’을 ‘되게 평범’하다고 소개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영국 작가들의 소설을 좋아해요. 여름엔 냉면 겨울엔 칼국수 먹는 것이 기쁨이고, 맛있는 떡볶이집을 찾아다니는 게 여행이에요.”

무대 위 강한 이미지 때문에 아직도 그녀를 사석에서 만나면 놀라는 사람들이 많단다. 얼마나 낙천적이고 여성스러우냐면 ‘이승에서 잘생긴 연하남과의 사랑을 이루는 달콤한 로맨틱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꿈꿀 정도니까. “노래할 땐 ‘가수 이정현’, 연기할 땐 ‘배우 이정현’이었으면 좋겠어요. 그 앞에 수식어가 붙으면 억지스럽거나 부담스러워지니까. 저를 결정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라는 마지막 대답을 끝으로 그녀는 그 무엇도 아닌 ‘이정현’이라는 이름만 남겼다. 세 시간 남짓 촬영을 통해 에디터에게는 ‘이정현답다’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생겼다. ‘아 덥다’, ‘아 맛있다’, ‘아 예쁘다’ 솔직한 감탄사를 연발하고, 함께한 스태프들에게 두 팔 벌려 고마움을 전하는 일에 지치지 않는 것. 볕 좋은 평일, 삼청동의 예쁜 핸드드립 커피숍에서 얼마 전 흥미로운 소설을 읽었다며 조곤조곤 스토리를 전해주는 여인을 만난다면 말해 줘야지. 당신, 내가 만났던 그녀를 닮았다고.

ㆍPhotographer｜Lee Kyoung-seobㆍAssistant｜J.J JeonㆍHair&Make up｜Ye-san&Oh Hee-jin(soonsoo beauty)ㆍSupport｜REX diamond